아버지의 구순, 그리고 낭도의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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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오후, 여수에 내리던 봄비는 밤 사이 그치고 아침에는 맑게 갰다. 엘비노펜션에서 바라본 여수 앞바다는 더 이상 바다가 아니라, 마치 잔잔히 흐르는 평화로운 강처럼 느껴졌다.

새벽, 어머니와 자매님들은 새벽 예배에 다녀오셨고, 매형들은 근처 산책에 나섰다. 나머지 가족은 펜션 바닥에서 어젯밤 부족했던 잠을 보충했다. 조용하고 평온한 아침이었다.

 

아침 식사는 떡과 과일로 가볍게 시작했고, 구수한 누룽지로 마무리했다. 이후, 여수에서 고흥까지 이어지는 연륙교를 따라 낭도를 먼저 들렀다. 낭도에서는 바다를 바라보며 트래킹 코스를 걸었다. 체력에 따라 완주하는 이도 있었지만, 나는 아버지와 함께 중간

의자에 앉아 사도섬을 바라보며 잠시 쉬었다.

 

아버지와 단둘이 나눈 대화 속에서, 문득 예전 같지 않은 아버지의 기력을 느낀다. 작년까지만 해도 체력 하나는 자신하시던 분이,

이제는 앉아 계시며 숨을 고르신다. 아흔의 세월이 무겁게 다가왔다. 자주 찾아뵙지 못한 마음에 죄송함이 밀려온다.

 

생신 파티 자리에서 “아버지, 원하시는 게 있으세요?”라고 여쭈었을 때, 아버지는 “나는 바라는 게 없다. 다만 자식들이 잘 되길

바란다”고 하셨다. 그 말씀에 마음이 뭉클했다. 정작 자신의 삶은 없고 오직 자식들 걱정뿐인 그 마음.

그 고요한 사랑이 가슴을 울린다.

 

트레킹 코스를 완주한 가족들과 다시 만나 점심은 고흥 과역의 기사식당으로 향했다. 여수에서는 회를 먹었고, 이곳에서는 백반에 대패삼겹살을 곁들여 먹었는데 다들 맛있게 드셨다.

 

아버지의 구순을 맞아 3남 3매, 17명의 대식구가 함께한 1박 2일. 서로 준비한 음식과 선물, 용돈, 그리고 마음까지 더해져 더욱

따뜻한 시간이 되었다. 가족이 함께한 이 시간 자체가 선물이었다.

이번 달 마지막 토요일엔 담양에서 어머니 생신을 맞아 다시 만나기로 했다. 낭도에서 바라본 사도 섬의 공룡 발자국처럼,

이 소중한 기억도 오래도록 선명하게 남기를 바란다.

 

낭도에서 바라본 공룡발자국이 있는 사도 섬

 

엘비노펜션 아침 풍경

1박 2일 동안 우리의 보금자리 엘비노펜션

아침은 간단하게 과일과 떡부터
아버지 뒤를 따라 낭도 트레킹 코스 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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