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 아내가 말했다.
“내일은 성산공원에 가자. 장미가 예쁠 거야.”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부드럽고 약간은 부족한 커피 한 잔이 먼저 나를 맞았다.
커피 맛은 연했지만, 그 마음은 짙었다.
식탁에 마주 앉은 아내가 덧붙였다.
“성산공원 들러 장미도 보고, 커피는 죽림 스벅에서 다시 마시자.”
그 말에 망설일 이유는 없었다. 우리는 길을 나섰다.
성산공원에 도착하니 하늘은 잔뜩 흐렸고,
장미는 아직 피지 않았다.
그러나 분수가 우리를 반기고 있었다.
장미 대신 푸른 산책로가 손짓했다.
잘 다져진 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온통 녹음으로 뒤덮인 그 길은,
오히려 장미보다 더 마음을 편하게 해주었다.
공원엔 각자의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이 있었다.
가족과 놀이터에서 웃는 아이들,
야구를 즐기는 청년들,
고기떼를 바라보는 사람들,
벤치에 앉아 쉬는 사람들,
그리고 우리처럼 나란히 걷는 사람들.
그 풍경 하나하나가 ‘잘 살고 있다’는 느낌을 주었다.
조용하지만 생기 넘치는 공간.
우리는 공원을 다섯 바퀴 돌았다.
그 시간 동안, 아내와 이야기 나누었다.
“자신만의 루틴을 가진 사람은 세상의 소리에 흔들리지 않더라.”
내 말에 아내는 웃으며 되물었다.
“그게 자기 말이야?”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아내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그 한마디 없는 수긍이 하루를 채워주었다.
공원을 나와 죽림 스벅으로 향했다.
하지만 주차 공간이 마땅치 않아 근처 다이소에 잠시 들렀다.
생필품 몇 가지를 사고는, 스벅까지 천천히 걸었다.
예전 투썸플레이스 자리에 들어선 그 스벅은
넓지 않았지만 조용했고,
모퉁이에 앉아 나란히 커피를 마시기에 딱 좋았다.
밖엔 아직 비가 오지 않았고,
우리 마음속에도 장미가 피지 않았다는 아쉬움은 없었다.
오늘은 장미가 없었지만,
녹음진 산책길과 익숙한 루틴,
그리고 아내와 나눈 한마디의 온기가
하루를 충분히 빛나게 해주었다.
장미가 피지 않아도 괜찮은 날이었다.
아니, 오히려 더 좋았다.

성산공원 대표 이미지, 인공 장미꽃




산책길 녹음이 좋다



분수가 반긴다

다음 주 터트릴 준비 중

편안하게 조용하게
티엘알디(감사하며, 배우고, 깨닫고, 실천하자)